예재헌 창업전문가 - Old is New: 옛 상권의 변신
본문
1. Old is New: 옛 상권의 변신
경동·남대문·용문…‘시장의 진화’
한물간 취급을 받던 상권의 부활도 두드러진다. 중·장년층과 노년층이 가는 상권으로 인식되던 옛날 상권에 젊은 세대가 몰리면서 매출이 전반적으로 상승했다. 오래된 건물이 많아 낙후됐던 신용산역 일대, 서울중앙시장을 필두로 매출이 급증한 신당역 상권, 노인의 성지로 불렀던 동묘앞 등이 인기를 끌었다. 올해는 특히 ‘시장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다. 경동시장, 남대문시장, 용문시장 등 낡았다는 인식이 강했던 시장 상권이 연일 소비자를 모으고 있다.
신용산역 상권은 2022년부터 신흥 강자로 부상한 지역이다. 삼각지역과 신용산역 사이에 자리한 ‘용리단길’이 뜨면서 상권 전체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20대와 30대의 집중적인 선택을 받았다. 2023년 상반기 전년 대비 20대 매출 증가율이 62.6%로 전체 서울 상권 중 1위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30대 매출 증가율도 45.8%로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용리단길 상권은 ‘음식’에 집중돼 있다. 전체 200여곳 매장 중 170곳이 넘는 매장이 음식 업종이다. 신용산역 상권의 음식업 매출액은 최근 2년 평균 22.5% 상승했다.
신당 상권 역시 근래 급부상한 지역이다. 1970년대부터 자리 잡은 중부소방서 일대 떡볶이 골목이 주 상권이었다. 한때 떡볶이 골목이 외면받으며 상권이 주춤했지만, 2022년부터 젊은 세대가 몰리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부활을 주도하는 상권은 황학동 싸전거리와 중앙시장 일대다. 싸전거리는 말 그대로 쌀가게(싸전)가 모인 골목이다. 신당사거리 뒤편에 위치한다. 쌀가게가 나간 자리를 ‘힙’한 가게들이 채우면서 ‘젊음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하니칼국수’ ‘발라닭’ ‘주신당’ 등 점포가 입소문을 타고 손님을 끌어모았다.
싸전거리 옆 신당중앙시장은 유튜브 덕을 톡톡히 봤다. 평범한 재래시장이었던 중앙시장은 시장 내 ‘옥경이네건생선’ ‘산전’ 등 가게가 유튜브에 소개되면서 순식간에 명소로 떠올랐다. 특히 2030 매출 증가가 눈에 띈다. 신당역은 지난해 상반기 20대 매출 증가율 36.2%, 30대 27.3%를 기록하며 MZ대세 상권의 저력을 증명했다.
올해는 유독 ‘시장 상권’이 강세를 띤다. 최대 수혜주는 ‘경동시장’이다. 경동시장은 노년층의 ‘홍대입구’로 불리는 상권이다. 60대 이상 매출액은 서울 주요 상권 중 강남·신사·논현 다음으로 순위가 높다.
올해 들어서는 30대와 40대 사이에서도 인기가 급격히 상승했다. 지나치게 비싼 물가에 지친 청년과 중년 세대가 경동시장을 찾기 시작했다. 경동시장은 도매와 소매를 병행하는 재래시장이다. 도매가격에 소매로 물건을 살 수 있어 물가가 저렴하다. 올해 상반기 기준 전년 대비 매출이 30대(26.1%)와 40대(19.7%)에서 눈에 띄게 커졌다.
재래시장 맛집도 입소문을 타면서 상권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다. 남원통닭, 황해도순대 등 저렴한 가격을 자랑하는 맛집을 중심으로 소비자가 몰렸다. 경동시장의 최근 2년 음식 업종 매출 평균 증가율은 33.3%로 서울 모든 주요 상권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024 지는 상권 홍대·신림
20대 소비 분산·감소 ‘직격’
서울 주요 상권 중 올해 가장 분위기가 나쁜 곳은 ‘홍대입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매출이 510억원이나 감소했다. 주요 소비층인 20대가 고물가에 지갑을 닫으면서 유동인구 자체가 줄었다. 올해 2분기 홍대 합정 지역 공실률은 12.2%로 전년 동기(5.7%) 대비 2배 넘게 늘었을 정도로 상황이 안 좋다. 음식(-369억원), 의료(-53억원), 생활서비스(-20억원), 소매(-7억원) 등 업종 전반에 걸쳐 부진한 양상을 이어가고 있다.
홍대입구에서 주점을 운영 중인 홍민표 씨(가명)는 “홍대 주차장거리 상권을 제외하면 유동인구가 코로나 팬데믹 때보다 오히려 더 없는 느낌”이라며 “지난해 엔데믹 기대감에 크게 늘었던 점포 수가 요즘에는 계속 빠지는 양상이다. 요새는 폐업을 고민할 정도로 장사가 안된다”고 토로했다. 홍대상인회 관계자는 “연남·성수·문래·용산 등 20대가 자주 찾는 상권으로 소비자가 분산되면서 경기가 더 안 좋아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20대가 주로 사는 원룸촌이 밀집해 있는 ‘신림’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홍대입구(-510억원)와 신사(-402억원)에 이어 3번째로 큰 매출 하락폭(-378억원)을 보였다. 건대입구(-52억원), 서울대입구(-10억원), 신촌(-1억원) 등 젊은 세대가 주로 찾았던 상권도 나란히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제 외식은 ‘강북’에서
충무로·을지로 상권 ‘호호’
음식 업종 매출은 상권 활성화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주요 지표로 꼽힌다. 2차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데다, 최근 외식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 해당 상권을 찾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 음식 매출이 가장 크게 오른 상권은 앞서 얘기한 가산디지털단지(84억원)와 명동(80억원)이다. 이 밖에 눈에 띄는 성장을 보인 상권이 모두 ‘강북’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서울시청(46억원), 충무로(45억원), 을지로3가(35억원), 종로3가(28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강북을 대표하는 오피스 상권. 여기에 최근 명동으로 늘어난 유입이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음식 매출 규모 자체는 작지만 높은 성장률을 보인 상권도 대부분 강북에 위치해 있다. 경동시장(23.1%)과 청량리(22.1%) 등 서울 동북 상권을 비롯해 약수(12.1%), 장충동 족발거리(12.1%), 이태원(9.8%), 남대문시장(5.9%) 등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