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김경인 창업전문가 - *리단길의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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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리단길의 유행

 

 

1990년 즈음 X세대들은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를 중심으로 유행을 전파하고 모임의 장소를 선택했다. 그 즈음 송파 문정동 로데오거리, 목동로데오거리등 일명 **로데오거리가 유행했었다. 2000년 초반의 핫플에이스는 이태원, 홍대 그리고 가로수길이었다. 즐비한 카페마다 자리가 없을 만큼 세 지역의 상권은 활기를 띠었고, 지역색에 걸맞은 개성 있는 숍과 레스토랑이 이어져 걷는 것 자체가 유희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의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상권이 커지자 모두가 우려했던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했다. 몇 배로 껑충 뛴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던 소상공인은 지역을 떠났고, 그 자리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가 상가의 대부분의 차지하고 지역만의 특색을 지워버리는 결과 그곳들만의 지역색을 잃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 이런 제트리피케이션의 영향과 주변의 대중교통의 발달로 인해 ‘리단길’은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했다. 리단길의 시초인 한남 ‘경리단길’은 2009년 이태원과 가까운 데다 비교적 임대료가 저렴한 주택가로 가게가 모여들며 형성된 거리다. 홍대 인근의망리단길과연리단길도 비슷한 배경에서 탄생하게 되었다.경리단길은 좋은 상권을 형성할 기반을 갖추지는 않았었다. 언덕은 가파르고 길도 꼬불꼬불해 불편하고 꺼려하는 지형적 특색을 가지는 불리하과 주택가에 들어선 가게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찾아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경리단길이 인기를 끈 이유는차별성이라 할 수 있다. 임대료를 절약한 소상공인은 가게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인테리어와 메뉴 개발에 더 많은 투자를 했다. 게다가 대다수 소상공인이 젊은 층으로 인테리어 감각이 세련됐다. 친숙한 골목길과 세련된 가게의 조합은 특히 20~30대에게 신선하게 다가왔고, 경리단길은 큰 성공을 거두며 전국에 ‘리단길’ 신드롬을 일으켰다.

전국에 있는 대표적인 *리단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부산 해운대해리단길은부산 해운대역사 뒤쪽 지역인 우 1동 일대에 만들어진 한적한 거리가 해리단길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저 멀리 화려한 초고층 빌딩들이 즐비하게 서있지만 이곳이 더욱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프랜차이즈 감성이 아니라 이곳만의 아늑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새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오래된 주택을 다 개조하고 리모델링해서 각자의 특색을 담아내고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느낌도 놓치지 않았다.

광주 동명동동리단길은마을을 에워싼 숲길을 비롯해 인스타 감성 충만한 카페들로 가득 차 있다. 사실 이곳은 학원들이 매우 밀집해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자녀들 학원 끝나는 시간을 기다리는 학부모를 위한 카페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기본 상권이 있는 상태에서 청년창업 붐이 일어나면서 인스타 감성을 자극하는 아기자기한 예쁜 카페와 작은 음식점 등 매력 가득한 상권들로 조성됐다.

전북 전주객리단길은조선시대 관리들이 묵었던 숙소인 객사가 주변에 있다고 해서 객리단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원래는 노후된 주택가였지만 한옥마을 인근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싼 임대료 때문에 음식점과 카페 등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곳도 지역적 특색과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 황리단길처럼 건물을 허물지 않고 최소한의 리모델링만을 해 고유의 정취를 풍기고 있다.

 경북 경주황리단길은첨성로와포석로가 만나는 사거리부터 내남 네거리까지 황남동의 옛 골목길을 일컫는 말이다. 원래는 점집이 많던 허름한 골목길이었는데 문화재 보존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보니 일반 상점들이 입점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최소한의 리모델링만 거쳐야 했는데 오히려 그런 점이 경주의 매력을 더 살리는 기회가 됐다.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와 꽃집, 책방과 카페 등이 어우러지면서 볼거리도 풍부한 편이다. 근처에 대릉원, 청마촌을 비롯해 많은 문화재가 있어 경주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코스로 자리 잡았다.

부평에 있는 평리단길은원래 커튼 골목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부평 문화의 거리에서부터 부평 시장 방향에 위치해 있는 아주 작은 골목인데 이런 전통 시장 안에 독특한 인테리어의 가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평리단길로 불리고 있다. 여전히 시장의 활기찬 분위기는 갖고 있으면서 젊은 층의 감성을 제대로 자극하는 분위기의 카페들이 많아 다른 리단길보다는 좀 더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2010년의 ‘경리단길’과 지금의 ‘~리단길’은 그 모습이 다르지 않다. 그리고 현재, 경리단길을 필두로 리단길은하나둘 쇠락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한남동을 가도 경리단길보다는해방촌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리단길의 쇠락 현상에는 복합적 이유가 작용한다. 물론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소상공인이 많이 떠난 탓이 크지만, 새로움은 찾지 않고 소위 인스타 감성만 좇는 특색 없는 가게와 주 방문객인 20~30대의 인스턴트식 문화 소비도 간과할 수 없다. 유행은 지나치게 빨리 바뀐다. ‘신선함’과 ‘특별함’을 위해 리단길을 찾던 젊은 세대는 신선함이 식상함이 되면 가차 없이 다른 리단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런 이유에서경리단길, 연리단길, 망리단길 그리고 지금 가장 핫하다는 송파 송리단길로 이어지는 리단길 유행 가도가 형성됐다. 그 유행이 지난 리단길에는 가게가 사라지고 ‘임대’, ‘매매’ 팻말이 들어서며 황폐한 골목으로 전락한다.
골목 문화로 칭송받는 국가는 단연 유럽이다.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유럽을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들은 “골목길만 걸어도 행복하다”며 칭찬하곤 한다. 그곳에 수백 년의 역사가 깃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파리 마레 지구, 프라하 황금소로, 포르투갈 오비두스 등 유럽의 골목들은 역사가 깊다. 적어도 한국의 리단길처럼 5년 안에 흥하고 망한 케이스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리단길을 유럽의 골목처럼 우리들의 가슴속에 계속 숨쉴수 있는 공간으로 남아있을 방법들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김경인 팀장